켄 레빈의 삶과 게임에 관련된 그의 이야기.

2013. 3. 3. 06:14준타의 잡동사니/그밖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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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3월 26일에 발매되는 바이오 쇼크 시리즈 최신작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개발 지휘를 맡고 있고
1편의 디렉터를 맡았던 게임 개발지 Ken Levine 씨와 그가 이끄는 개발사 Irrational Games.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 세계관과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켄 레빈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 회사와 그의 과거를 되돌아 보면서 그가 게임에 담은
생각을 알아가 봅시다.


폐인이었던 소년시절을 거쳐 바이오 쇼크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명작 바이오 쇼크를 만든 게임 개발자는, 1966년에 보석상을 운영하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뉴저지주
버겐 카운티의 어퍼 새들 리버라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 어린 시절 레빈씨는 스스로 결코 자랑할 게 없는
Nerd(폐인)였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한적 있습니다.

로건의 도망(2300년 미래로의 여행)부터 픽션 소설에 열중, X-Men을 숭배, 방에 쳐박힌채로 TRPG D&D나 아바론힐 사의
모드게임 Luftware나 Panzer Blitz등을 플레이했고, 처음으로 손에 넣은 비디오 게임기는 생일때 받은 아타리 2600이었다고 합니다.
비디오 게임 문화가 개화되는 시점에 있었던 그는 누구나 그리워하는 소년 시절을 자신에 있어서는 폐인으로써
고독한 청춘이었던거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 당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서, 코믹이나 게임, 소설등의 자신이 좋아하는것에만 몰두하는 어두운 열정을 가진채로
겉모습도 속도 완전히 폐인인 소년이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가족들은 그를 이해했지만, 학교에서의 놀림감이 되어,
매일 아침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수업전에 몇번이나 심하게 팔을 맞는 체험을 겪으면서 그런것들애 대해 어렸을적 그는
뇌내망상속 복수극으로 대항했었다고 합니다. 마음속에서 가시가 돋아난채로 있었던 우울한 청춘이었지만, 그가 겪은것들이
후에 게임 디벨로퍼의 길로 이어지게 됩니다.



버겐카운티는 1990년대에 대규모의 일본인 사회가 존재했었던걸로 알려져 있으며, 레빈씨가 만든
작품 시스템 쇼크2의 초반에 등장하는 일본식 간판도 이에 영향을 받았던거라고.


청년시절에 체험했던 각본제작 경험과 영화업계 경험이 게임 개발로..


청년이 된 그는 점점 동료들을 만들수 있었으며, 2명의 친구와 함께 소년시절과 비교하면 꽤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는 3명중 유일하게 없었다고 하지만....) 안식의 폐인생활을 보내는 중, 15세때
그에게 전환기가 찾아옵니다. 당시 여름 예술 캠프에 참가했던 그는 고문의 권유로 마지막의 연극 각본과 무대를
맡게 됩니다. 여기서 그가 쓴 대본은 대 호평을 받아 캠프내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연예에 흥미를 가져, 뉴욕의 바사 대학의 드라마 학부에 입학한 그는, 후에 게임 개발에도 발휘되는 스토리텔링과
연극이나 각본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그의 재능이 순식간에 꽃 피웠는지, 이 대학이 주최를 맡는 파워 하우스 씨어터의 워크샵
공연에 있었던 프로급 작가가 그의 재능을 발견, 그 작가로부터 헐리우드 에이전트를 소개받게 됩니다. 졸업 후엔 LA로 주거지를 옮겨,
2개의 영화 각본제작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후에 게임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극작가나 영화 감독인 켄 레빈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납득할만한 영화 각본을 쓸수 없다는것에 불만을 느끼는 도중, 당시 동거하던 친구가 불러서 간 영화 페스티벌에서
감명을 받은 그는, 수년만에 뉴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귀향한 그의 눈에 띈것은 어릴적부터 쭈욱 좋아하던 게임. 어떤 잡지에 실려있던
Looking Glass Studios의 디자이너 모집 광고였습니다. 게임 업계로 발을 디디는 그의 나이 29세 게임의 개발 경험은
일절 없는 상태.


명작 Thief와 System Shock로 발휘되는 그의 재능.


룩킹 글래스 스튜디오에 채용된 그는 메사추세츠 공대를 중퇴한 게임 디자이너 Doug Church씨에게 배움을 청하면서 명작
Thief : The Dark Project의 개발에 종사합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만들어낸 요소를 파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민하는 아이디어는 과감히 내던져 버리는 처치씨의 자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세를 현재의 그와 이레이셔널 게임즈도 계승한거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번작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멀티 플레이에 관해서
40개 이상의 디자인을 테스트 했으며 그 중 좋은것도 있었지만, 기준이 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에 모두 파기했던 것이 밝혀지고
있었거든요. 실제 이번작에 멀티 플레이 모드가 탑재될 예정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켄 레빈씨가 과거 근무했던 회사 룩킹 글래스 스튜디오. 수많은 명작에 참여한 더그 처치씨도
여기에 있었다.



3D 잠입 게임의 원조라고 불리우는시프. 98년작이면서, 빛과 그림자 그리고 소리의 요소 그리고 AI에게 발견되는
시체등 현재 통하는 요소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최신작 4는 에이도스 몬트리얼이 개발중.


Doug Church씨 밑에서 게임 개발을 배우던 켄 레빈씨는 Thief 제작에는 반밖에 참여할수 없었고, 다른 스텝과 함께
다른 게임 개발로 돌려졌지만, 그 마저도 취소가 되버립니다. 이때 함께 이 프로젝트에 돌려진 Jonathan Chey씨와
또 한명 Robert Fermier씨가 의기 투합해 3명이 독립, 이레이셔널 게임즈를 설립하게 됩니다.

우울한 폐인의 청춘시대 각본과 극을 배운 청년시대에 이은 게임회사 재직시대의 3개의 경험이 합쳐져 FPS역사에 있어
빠지지 않는 명작이자 이레이셔널의 처녀작인 시스템쇼크2가 99년 탄생합니다. 전 회사인 룩킹 글래스 스튜디오와 협력,
완성한 이 작품은 처음부터 이어지는 보이스 로그나 밀폐 공간의 공포감, 광기가 느껴지는 캐릭터와 호러 연출및
캐릭터 육성등의 RPG 요소등을 모아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낸 SF-FPS 였습니다. 전작 시스템쇼크를 제외하면
시스템쇼크2는 그가 만든 바이오 쇼크 시리즈에 이어지게 되는 원조적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원래 시스템쇼크는 룩킹 글래스 스튜디오의 작품이고 이레이셔널은 완전 신작을 원했지만, EA의
뜻에 따라 후속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룩킹 글래스는 이레이셔널의 게임 엔진과
스튜디오 공간등을 제공및 지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쇽 인피니트에 탑재되는 1999 모드는 사실 이 시스템쇼크2에서 유래되었다. 난이도가 당시의 게임처럼 올라가며,
캐릭터 육성도 제한된다.



스토리 텔링 천재가 다루는 시리즈 최신작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

이레이셔널 게임즈는 프리덤 포스나 Swat4, 트라이브스 : 벤전스 등의 작품을 거치면서, 다시 켄 레빈씨가 지휘한
시스템 쇼크2의 정신적 속편 바이오 쇼크를 07년도에 발매합니다. 벽에 비치는 그림자, 피투성이 바닥, 흉기를 가지고 쓰러진시체,
오디오 로그로 들려오는 광기어린 목소리등, 주위의 요소로부터 본 내용을 전하는 훌륭한 스토리 텔링과 깊게 파고 들수 있었던
공상 세계, 게임임을 수시로 취하는 플롯은 07년 당시 콘솔로도 잘되었으며,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게 됩니다.



바이오 쇼크의 성공으로 큰 주목을 받은 켄 레빈씨. 해외 잡지 게임 인포머의 Storytellers of the Decade
에 뽑혀 회사 역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스튜디오간 사정이나, 바이오 쇼크2의 발매 (2 개발에는 켄 레빈이 관련되지 않았습니다.) 등을 거친 2013년 올해 마침내
6년만에 그가 다루는 최신작이 돌아옵니다. 그는 과거의 인터뷰에서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는 3로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리즈의
작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람보 플레이나 해킹 마스터까지 여러가지 게임 플레이를 허용하는 RPG와 FPS의 융합.
앞서나간 공상 세계의 구축, 그 세계관에 맞물린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이야기. 빅 대디나 리틀 시스터가 등장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관과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켄 레빈씨와 쇼크의 이름이 붙는 타이틀들이 계속 가져오면서 길러온 요소들은
최신작 인피니트에 계승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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